인생에 뜻을 세우는데 있어 늦은 때라곤 없다

그냥

"소록도 두 수녀 이야기, 오스트리아에도 이젠 널리 알려질 것"

projin 2016. 8. 13. 14:07

[만해대상 20주년]
만해대상 시상식 대신 참석한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원들

전쟁·신탁통치 겪은 오스트리아, 어려운 형편 속 한국 원조 나서
신자들이 식사 줄여 기부한 돈… 병원 세우고 수녀들 활동 지원
"난민 문제 등으로 후원 저조… 수녀님들의 삶이 경종 울릴 것"

 

"이제 오스트리아에도 한국 한센병 환자를 위해 인생을 바친 마리안느·마르가레트 수녀님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질 겁니다"

12일 오전 만해대상 시상식을 앞두고 강원 인제 만해마을을 찾은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이사진 3명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안드레아 에더러(52) 부회장, 에바 마리아 오버하우저(66) 부회장, 마리아 호이어(62) 이사는 노환으로 2016 만해대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만해실천대상 수상자 마리안느 스퇴거(82) 수녀와 마르가레트 피사레크(81) 수녀를 대신해 한국을 찾았다. 오스트리아에서 마을 잔치, 결혼식 같은 경사스러운 날 입는 민속의상을 맞춰 입었다.


마리안느 수녀가 소록도에서 43년간의 봉사를 마치고 2005년 지병으로 오스트리아에 귀국했을 때 고향 사람들조차도 마리안느 수녀가 어떤 일을 하고 돌아왔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한국에서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일 뿐이었다. 에더러 부회장은 "가톨릭부인회가 1958년 첫 해외원조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 대상이 한국이었다는 사실이야 부인회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만 소록도에서 봉사하던 마리안느·마르가레트 수녀 이야기는 부녀회 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이번 수상 사실을 오스트리아에 돌아가 부인회 안팎에 널리 알려 요즘 잊혀 가는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일깨우겠다"고 말했다.

올해 만해실천대상을 수상한 마리안느·마르가레트 수녀를 대신해 방한한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이사진이 12일 강원 인제 만해마을을 찾아 만해 한용운 흉상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가톨릭부인회는 1958년부터 교육·고아 구호·한센병 치료 사업 등에 100억원 규모의 지원을 했다. 왼쪽부터 안드레아 에더러 부회장, 마리아 호이어 이사, 에바 마리아 오버하우저 부회장.

 

 

 

1947년 결성한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는 1958년 첫 해외 구호 사업으로 한국을 택했다. 1958년부터 양로원·고아원·의료·교육 사업 등에 1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지원했다. 한국 학생 100여명을 초청해 유학 기회를 주기도 했다. 마리안느·마르가레트 수녀도 부인회가 소록도 한센병 환자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했다. 부인회는 이들의 요청에 따라 소록도에 결핵병동과 영아원 등을 건립하고 두 수녀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2차대전 후 연합군의 신탁통치 끝에 1955년 주권을 회복한 오스트리아는 당시만 해도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오버하우저 부회장은 "한국이 받은 돈은 오스트리아 가톨릭 신자들이 점심 한 끼를 수프로 때우고 남은 돈을 기부한 데서 나온 셈"이라며 "오스트리아도 힘든 시기였지만 끼니도 때우기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뜻에 모두가 동참했다"고 전했다. 내년이면 창립 70주년을 맞는 부인회는 현재 연 200만유로(약 25억원)의 후원금을 남미, 아프리카, 네팔 등 저개발 국가 후원사업에 쓰고 있다. 전국적으로 15만 명 이상의 회원이 있는 오스트리아 최대 여성 단체이기도 하다. 호이어 이사는 "가톨릭은 믿음보다도 실천을 강조한다. 봉사와 나눔이 실천이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기부 문화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저성장과 실업 문제, 늘어나는 이민자와 난민으로 배타적인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 오버하우저 부회장은 "충분하지 않아서 나눠주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풍요로워서 나눠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2차대전의 참화를 경험했던 세대, 1955년까지 이뤄진 신탁통치를 경험했던 세대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수녀의 수상 소식이 더 반갑다고 했다. 에더러 부회장은 "현대 부인회는 대부분 풍요를 누리며 살았던 세대라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며 "후원 열기가 식어가는 상황에서 부인회 사업의 산증인인 두 수녀의 삶은 나눔 정신 회복을 위한 불씨가 되어줄 것"이라고 했다.

환자들을 보살피던 두 수녀는 70세가 넘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짐이 되기 싫다'는 편지를 남기고 2005년 고국으로 돌아갔다. 1 주일 전 마리안느 수녀는 이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결실을 보게 되어서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LIST